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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시대를 말한다 - 서용선 작가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인물화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자신을 그린 자화상(自畫像), 거리 같은 배경으로 타인(他人), 군중(群衆)을 그린 작품들.

서용선(72) 작가가 인물화에 관심을 가진 것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이쾌대(1913~1965)를 제외하고는 인물 표현이 많지 았았다는 점에 착안해서이다.

작가는 인간·인물에 대한 40여년간의 작업이 미술사적으로 유의미하다는 점을 에둘러 말하는듯 했다.

한국 현대 미술사 측면을 보면 서용선이 보인다. 그가 인물화를 택한 선택과 포착은 탁월하다. 작가는 전략을 구사할 줄 알아야한다.

서용선이 화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1980년대, 조선 500년 역사에서 짧았던 단종 시대에 관심을 가진 것은 화가로서 설 자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시대 인간을 마치 발가벗겨 놓은 듯 거칠고 굵은 선을 붉게 칠한 역사풍경화 속에 펼쳐 놓았다.



시대를 건너며 체화된 ‘붉은색’, ‘그리드’(Grid)

작가가 공동건축주인 경기도 양평 문호리 <ㅇㅅA>(‘오사’로 발음)건물은 전체가 붉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는 작품의 대상 인물의 눈에서부터 얼굴과 신체, 윤곽이나 격자의 선과 여백에 자주 쓰인 붉으죽죽한 색에 주목하였다. ‘(색이) 대상을 여백과 분리 또는 연결하며, 사실적 또는 추상적이기도 하며, 상징인 동시에 심리를 드러낸다’고 보았다.

서용선은 붉은색이 작품의 주조(主調)가 된 이유를 말한다. “첫째 관객을 자극할 목적, 둘째 1970년대, 앵포르멜 회화가 색을 배제한데 대한 거부감, 셋째 색을 이데올로기의 무기로 삼는 유신 독재 체제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내면에서 붉은 색은 검정과 흰 색의 중간에 위치하며 투명하다고 본다. 붉은 색은 서용선의 특징인 격자(格子) 즉, 그리드(grid)와도 연계된다.

“격자 형태의 선들은 투시원근법적인 도시 공간의 지각을 형성한다. 거리는 바짝 압축되고, 다른 시간 혹은 공간이 단일 이미지를 구성한다. 주관적 심리와 실재적 감각 사이에 존재하는 종합적인 지각의 이미지이다.” (건축가 정의엽) 

그리드는 권력에 대한 공포심리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서울 삼선교 사거리에는 엠피(MP) 글자가 선명한 하얀색 바가지를 쓴 헌병(憲兵)이 호르라기를 불며 차와 사람을 걸러냈다. MP가 Military Police(군사 경찰)의 약자라는건 군에 가서 알았다.

어느 날 마당에 정차된, 지붕을 탈착한 헌병 지프차가 갑자기 출발하면서 어린 서용선은 뒷좌석의 안전 바를 놓쳐 땅에 엎어지며 얼굴이 갈려 버렸다. 

미아리로 이사 간 후 얼마되지 않아 형사가 부친을 찾아왔다. 한켠에 선 형사가 부친에게 친인척 행방에 대해 묻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아직도 연락이 없느냐?'는 투였다.

멀찍이 떨어져 있었으나 아버지는 주눅 들어있었고 형사의 직설적 말투는 위협적이었다. 산세에 기댄 시멘트 벽돌(일명 브로크)로 얼기설기 쌓아올린 한적한 주택 마당에서 공포감이 엄습했다. 이 두 사건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깊이 각인되어 있다. 

성인이 된 1970년대 초 준공된 청계 고가도로 밑을 걸어 지날 때 느낀 공간 위압감은 이후 작업에서 구조와 색채로 드러났다. 당시 소나무 풍경 배경의 그리드는 뚜렷했다.

화면의 장소인 지하철, 건물, 상점 등은 두드러진 그리드와 다양한 원색의 조합이 특징이다. 그리드는 모더니즘 건축의 핵심 평면 개념으로 근대와 현대가 중첩된(layers) 느낌을 준다. 특유의 원색의 붓터치는 날것 인간을 드러낸다.



자화상 

"Ogni pittore dipinge se"(모든 화가는 (결국) 자신을 그린다). 이 문장은 르네상스 시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언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나리자의 얼굴 속에서 다빈치의 페르소나(persona)가 포함되었다는 학계의 이론으로 개연성을 얻고 있다. 이 화두는 회화의 심리적인 차원과 맥락에서의 정의로 의미를 갖춘다.(미술사가 김정락)

카라바조(Caravaggio·1573~1610)의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1610)에서 다윗의 손에 들린 골리앗은 살인자로 전락한 현재의 카라바조 자신의 얼굴이다. 다윗은 젊은 카라바조의 얼굴이다. 젊은 카라바조가 나이 든 카라바조를 죽인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벽화 ‘최후의 심판’(13.7×12.2m 1537~1541)에 등장하는 인물 중 성 바르톨로메오는 빈 자루처럼 축 늘어진 살가죽을 한 손에 들고 예수를 바라보고 있다. 그가 들고 있는 인피가 미켈란젤로 자신이다.

바르톨로메오는 인도로 건너가 하느님 나라를 알렸고, 인도 왕과 공주를 비롯한 사람들을 개종시키다가 살가죽이 벗겨지는 형벌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서용선은 1975년 자화상을 처음 그린 이후 틈틈이 작업을 했다. 1995년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처음 참가한 미국 버몬트주에서 부터 본격적으로 그린다. 도구나 재료에 대한 제한이 덜한
드로잉으로 시작했다. 자화상은 매개체로 거울이필요하다. 불현듯 멋있게 그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인간을 이해하는 한 방법으로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한건데 치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골격만 그리다

서용선은 19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대상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우연히 단종의 시신이 던져졌던 평창강 지류인 청령포 서강에서의 특별한 체험 후 골격(骨格)만 그려내려 한다. 그림을 살은 다 빼버리고 뼈다귀만 가지고 그린다.

지난해 인터뷰에서 필자는 이렇게 물었다. “인물을 성기게 그린다. 그 성긴 여백으로 인물과 시대, 환경 등이 보인다. 인물을 둘러싼 관계 설정 때문인가?” 

“공간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진행형이다. 연속되어 변한다. 사람은 고정되어 정지되는 일이 없다. 사람은 공간과 상호 작용을 한다. 상황과 사람과의 관계를 파악하는 게 어렵다.”

작가는 30년 이상 서울 돈암동에서 관악구의 서울대를 통근하며 새롭게 올라가는 건축물들과 확장되는 도로및 가로를 관찰할 수 있었다. 또한 독일 베를린, 미국 뉴욕 지하철 안의 수직 공간적인 풍경들을 지켜보았다. 도시 건축적 환경이 서용선의 그림을 만들었다.

작품에서 인간은 경직되어 보인다. 관객은 실제 등장 인물보다도 캔버스 화면을 경직되게 본다. 움직일 수 없는 조건인 캔버스 평면에 대상들을 가져와 더 평면화시켜 화면에서 탈출한다.

그의 그림이 점점 커지고 있다. 문화저변이 넓어진 사회환경 측면을 원인으로 꼽는다. 대형 공간을 가진 전시 주체들의 제안에 따른 작업이 많다. 한국미술의 역동성이 작가에게도 영향을 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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